자동
회원가입 | 아이디 · 비밀번호 찾기




Quality LED Signs
 
작성일 : 10-06-14 19:42
마감은 나의 힘?
 글쓴이 : 신 아연
조회 : 4,473   추천 : 0  

글이 잘 안 써지거나 아예 안 쓰고 싶을 때면 이따금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곤 합니다. 마치 남의 글을 검색하듯 인터넷 검색창에 제 이름을 친 후 떠오르는 글을 찾아 읽는가 하면 잡지나 신문에 난 글을 뒤적이기도 하고, 그간 낸 책을 떠들리는 대로 아무 데나 펴서 읽기도 합니다.

얼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참 많은 글을 썼습니다. 칼럼도 쓰고 르포도 쓰고 사진 에세이도 쓰고 번역글도 쓰고 콩트도 쓰고 마구마구 써왔습니다. 그런 자신을 돌아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징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쉼 없이 글을 쓸 수 있었는지, 지속적으로 글을 쓰게 하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아직 아무도 안 물어왔지만 혹시 누가 저에게 글쓰기의 동기를 묻는다면 대답할 말도 준비할 겸 말입니다.

'주변에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아름다운 세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관계의 회복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같은 거창한 동기로 글을 써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어이없고 맥 빠지게도 지금까지 제 글은 순전히 '마감'에 떠밀려서 나왔습니다.

기형도 시인은 '질투는 나의 힘'이라 했지만 제게는 '마감은 나의 힘'인 것입니다. 기 시인이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다'고 했다면 '내 글의 내용은 마감에 쫓긴 기록뿐이었다'고 해얄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미당 선생이 자신을 키운 8할은 '바람'이라고 했다면 제 글을 키운 8할은 '마감'이라고 해야겠습니다.

'마감'에 떠다밀리기는 비단 글뿐이 아닙니다. 공과금이나 전화요금, 보험료 등을 비롯해 각종 서류나 서식을 작성하고 제출할 때도 마지막 날에 가서야 처리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마감일까지 원고쓰기를 미루는 데서 비롯된 일상의 못된 버릇입니다.

의식을 하든 안하든 사람은 누구나 어떤 에너지에 의해 추진을 받습니다. 아비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복수심을 추진력 삼아 소림사 칼잡이가 무술의 기막힌 경지에 도달하는 것처럼요. 어떤 사람은 질투나 경쟁심을 연료로 하여 에너지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좌절과 배신감이 어떤 행동과 목표를 집중적으로 몰아가거나 와신상담하며 기회를 노리게 합니다.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과 순수한 이타심 같은 긍정적 에너지원은 구도와 구원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지만 부정적 에너지의 펌프질이라 해서 반드시 구정물을 퍼올리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한 시기와 질투, 탐심과 욕망, 경쟁과 비교 등을 구태여 '부정적 에너지원'이라고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지만 여하튼 이기심의 충족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지칭하기로 한다면 말입니다.

긍정적 에너지로 몰아가든 부정적 에너지로 충전되든 간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목표와 방향이 뚜렷하고 성취 지향적이라는 점에서 어찌 '마감' 따위의 추진력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마감'은 실상 어떤 형태의 추진력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치대고 드는 귀찮고 부담스런 존재를 일시적으로 떼어놓는 모호하고 수동적인 마지못한 몸짓일 뿐.

마치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 마땅히 해야 할 공부를 미루고 있는 고3생처럼 노상 미적거리고 뭉개는 제 버릇이 바로 이 '데드라인'에서 연유했으니 이 버릇을 그대로 뒀다가는 그야말로 생을 잠식하는 '데드라인'이 될 것만 같습니다.

결코 깨어남이 없는 잠을 자듯, 깊고도 가없는 고질적 우울증에 걸린 듯, 게으름과 나태에 매몰된 타성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반성과 자각이 최근 들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입니다. 요즘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때'라고 격언이 비틀어졌지만 늦었어도 하는 수 없습니다. 그래도 고쳐 살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고치고 싶습니다.

실은 조만간 제 삶의 기반에 불어 닥칠 변화로 인해 이런 늦은 깨달음이 '떠밀리듯 왔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고백합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한 잘못 살아온 것을 깨닫고 고치고 다시 시작하는 데는 결코 '마감'이 없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제 삶을 밀어 올리는 에너지원을 교체함으로써 밝고 건전하며, 투명하고 순박한, 생명력 넘치는 생활이 제 앞에 펼쳐지기를 진정 소망해 봅니다.


정동철 10-06-18 10:11
 
공감 넘치는 글입니다. 떠밀리듯 삶이이지만 어떻게 '잘' 떠밀리는 것도 흔치 않은 기술입니다.. ㅎㅎ
신 아연 10-07-05 10:19
 
정변호사님, 답글이 늦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튼 마감일은 정말 괴롭죠...^^
 
 

Total 269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신 아연 칼럼" 소개와 필자 길따라 05-13 41961 0
149 김근태 고문을 생각하며 신 아연 01-29 4310 0
148 저어하는 마음 신 아연 01-03 4483 0
147 사랑의 언어 신 아연 12-23 4352 0
146 눈물 젖은 글 신 아연 12-06 4531 0
145 우리 어머님 2 신 아연 11-15 4672 0
144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신 아연 10-13 4672 0
143 사랑은 믿어주는 것 신 아연 09-20 4530 0
142 우리 어머님 신 아연 08-25 4674 0
141 "돼지고기 계세요?" (1) 신 아연 08-06 4955 0
140 "Don't get Old" 신 아연 07-16 4771 0
139 살며 요리하며 신 아연 07-01 5462 0
138 적성도 좋지만 신 아연 06-22 4435 0
137 작은 새와 함께 한 월요일 신 아연 04-06 4787 0
136 제 손 잡지 마세요 신 아연 12-24 4972 0
135 밥장사하는 재미 신 아연 12-24 5172 0
134 소중한 그 번호 856 4435 신 아연 12-24 4815 0
133 라포자? 노포자! 신 아연 12-24 5260 0
132 "신문지에 난 글 잘 읽었어요" 신 아연 07-13 4520 0
131 그 날의 '황당 해프닝' (3) 신 아연 07-05 4637 0
130 입장바꿔 생각하기 신 아연 07-05 5145 0
129 16강 가던 날 (3) 신 아연 07-05 4504 0
128 마감은 나의 힘? (2) 신 아연 06-14 4474 0
127 5월은 ‘관계의 달’ 신 아연 05-28 5223 0
126 "가을 타세요?" (3) 신 아연 05-21 5021 0
125 스승의 날에 신 아연 05-14 4622 0
124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신 아연 05-01 5344 0
123 글을 묻는 그대에게 (2) 신 아연 04-23 6535 0
122 '신체만사 새옹지마' 신 아연 04-19 4864 0
121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 (3) 신 아연 04-09 5536 0
120 어느 날의 퇴근 시간 신 아연 03-26 4569 0
 1  2  3  4  5  6  7  8  9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수집거부  |  포인트정책  |  사이트맵  |  CONTACT US
    Copyright © 2000-2010 hojugiltara.com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TECHWID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