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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9-03 18:29
나향욱이 짓이긴 개, 돼지의 꿈
 글쓴이 : 신 아연
조회 : 3,867   추천 : 0  

교육부 고위직에 있는 나향욱(47)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 돼지와 같다. (우리나라도) 신분제를 정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이 7월의 폭염만큼이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7일 경향신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각자 출발선이 다른 게 현실이니 국민 상하간의 격차를 인정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구의역 19세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내 자식의 일처럼 가슴 아파하는 것은 위선이라는 말도 했다지요.
 
그는 이어 신분제를 공고히 한다는 것은 ‘위에 있는 1%가 아래에 있는 99%를 먹여주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일단 신분의 구분 내지는 차별선을 그어놓고 마치 개나 돼지를 사육하는 것처럼, 도탄에서 신음하는 무지렁이들을 구제하자는 뜻이었나 봅니다. 
 
나씨는 지금 아마 이런 속내를 털어놓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신분제 발언이 헬 조선, 금 수저 흙 수저, 더 이상 개천 용은 없다는 식의 말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개, 돼지 스스로가 그런 따위의 말을 자기들에게 적용할 때는 언제고, 그것이 곧 신분의 차별을 뜻하며 삶의 격차를 반영한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가당착은 또 무언가’ 하고요.  
 
그는 또 자신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를 의아해하며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는 말이 뭐가 문제인가. 결국 모두 먹고살자고 저리도 아옹다옹하는 것 아닌가’하며 억울해 할 것도 같습니다. 컵라면도 먹지 못하고 죽은 앳된 청년을 어떻게 내 피붙이의 슬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냐는 말에는 ‘남의 염통 썩는 것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프다는 말에 누가 동의하지 않으랴’는 심사가 한 자락 깔렸던 게 아닐까요.
 
저는 여기서 ‘간극’이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나씨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의 현실과 정서상의 간극, 나씨가 지적한 1%와 99%의 아득하고도 절망스러운 그 간극 말입니다.
 
<허삼관 매혈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국 작가 위화는 2007년에 장편 <형제>를 출간하면서 이 소설은 ‘거대한 간극’에 대한 글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문화대혁명과 산업화가 진행되는 오늘날의 간극은 역사적 간극일 테고, 소설 속 주인공간의 간극은 현실적 간극일 것이라며 우리 모두는 거대한 간극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과 과거 사이가 아닌, 오늘과 오늘을 비교해 봐도 완전히 다른 시대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일례로 그는1990년대 후반 무렵 어느 어린이날에 두 어린이를 예로 들면서, 북경의 한 사내아이는 장난감이 아닌 진짜 보잉 비행기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서북 지역의 한 여자아이는 부끄러운 듯 흰색 운동화 한 켤레를 받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운동화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보잉 비행기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것만큼이나 까마득한 일일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위화의 표현대로라면 이쪽과 저쪽 양극단에 나씨와, 나씨가 표현한 개, 돼지가 존재합니다. 나씨를 떠받치는 삶의 양태가 불건강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씨 반대쪽 극단을 건강하지 않다고 매도할 수 없듯이요. 위화 역시 우리는 모두 병자(病者)일 수도 있고, 모두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극단은 곧 불균형이며 지역 간의 불균형, 경제적 발전의 불균형, 극단적인 개인 삶의 불균형이 초래하는 것은 결국 꿈의 불균형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꿈은 모든 사람의 삶에 꼭 필요한 재산이며 최후의 희망입니다. 설사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도 꿈이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오늘날 우리는 꿈마저 균형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개, 돼지처럼 먹여 살려 주기만 하면 되지 않냐는 나씨의 망언은 사람이 가진 최후의 희망인 꿈을 짓이긴 것이기에 공분을 사고 있는 것입니다. 위화의 지적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간극이 거대하긴 거대한가 봅니다. 일생 좋은 운과 각종 혜택을 누려 온 사람으로서  혹독한 시련과 아픈 세월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보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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