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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22 17:46
금강산 식후경은 이제 그만
 글쓴이 : 신 아연
조회 : 8,088   추천 : 0  

가열했던 더위가 마침내 스러졌습니다. 여름을 꺾고 가을이 이겼다는 승전보를 학수고대했던 사람들은 수런수런 계절의 변화를 이야기할 뿐, 가을의 기습 공격을 받아 추러히 퇴각하는 여름 뒤통수에 일말의 연민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여름은 정말이지 혹독했으니까요.
 
더불어 피서행렬 또한 가열했기에 피서지에 대한 기억들로 지난여름을 갈무리하는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여행도 엄연히 문화에 속하는지라 우리의 여행문화를 타국과 비교할 필요는 없지만 지난 5월, 호주를 다녀오면서 느낀 점을 떠올려보며 집에서만 맴돌았던 저의 올여름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호주는 세계적 관광지답게 사시사철 버스나 승합차로 많은 숫자의 관광객을 실어 나르지만 이른바 명승지 주변에 대중음식점이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아무리 유명한 곳이라 해도 인근 마을은 여느 곳과 다름없는 일상을 이어갑니다. 여행자들을 위해서는 기껏해야 피시 앤 칩스와 커피, 음료수, 아이스크림 따위를 파는 안내소를 겸한 매점 정도가 고작입니다.
  
큰아이가 현지에서 여행업을 하는 연유로 그야말로 아담과 이브가 부끄러운 곳만 가린 채 불쑥 나타날 것 같은, 지구 역사상 가장 오래되었다는 태곳적 숲과, 용왕이 다스릴 법한 황홀하고 신비한 바다 속 왕국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여 그렇게 이름난 곳을 가는 길인데도 휴식이래봤자 화장실이 딸린 길가 공원에 잠시 차를 세운 후 비스킷 한 조각과 커피로 간단히 목을 축였을 뿐입니다.
 
약 20인승 승합차로 이동하는 중에 관광 해설사 겸 운전사가 식사 시중까지 함께 들었습니다. 시중이래야 목적지 입구에서 적당한 벤치를 물색하고 돌 판이나 야외 테이블에 식탁보를 덮은 후 도시락을 꺼내 주는 일뿐입니다. 출발 전 집결지에서 관광객들은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승합차 꽁무니에 달린 작은 트레일러 속 아이스박스에 맡기는데, 그 도시락이란 것이 또한 부실하기 짝이 없어서 바나나 한 개, 사과 한 알, 빵 한 조각 등이 대부분입니다.
 
여행사 측에서 점심을 제공받으려면 패키지여행 요금과는 별도로 10불 정도의 추가 비용을 내야 하지만 여행객들은 그것도 불필요한 지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이 '효자'라 저는 여행사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었지만 닭다리 하나를 뜯은 것 외에는 각자 지참한 도시락과 내용면에서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점심에 소요된 시간은 약 15분, 깔았던 식탁보를 걷는 것으로 정리는 끝, 일행은 곧 숲 속으로 향했습니다. 금강산 식후경이란 말이 무색하게 크루즈 여행이 아닌 다음에는 간단한 점심으로 시간을 절약하고 이동을 가뿐하게 하도록 일정이 짜여져 있었던 것인데, 아들과 저는 그날 하루를 ‘빵쪼가리’로 때운 후 시내로 들어와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출발하는 순간부터 주최 측에서 준비한, 한 끼 식사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거나한’ 간식이 나오기 시작해서 두어 시간도 지나지 않아 관광지 식당에서 반주까지 곁들여 정식으로 먹어대기 시작합니다. 무슨 금과옥조라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어디를 가든 먹는 게 시원찮게 나오면 무조건 기분이 ‘잡치고',  반대로 볼 것은 기대보다 신통치 않았어도 일단 음식이 잘 나오면 어지간한 불만은 무마되지요.
 
저는 1박2일 여행을 다녀오면 영락없이 몸무게가 1킬로그램 늘어나는데 저만 그런가 했더니 같은 이유로 지인은  2박3일 이상은 안 간다며, 계속해서 너무 잘 먹어 체중이 2,3킬로그램이나 불어나 제자리로 돌려놓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우리는 놀러가서까지 왜 이렇게 먹는 것에 집착을 할까요?
 
옛 사람들에게는 어쩌다 쉬는 날이 모처럼 별식을 먹는 날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여북하면 꽃구경 길에 꽃을 따 전을 부쳐 먹는 화전놀이가 다 생겼을까요? 금강산 식후경이란 말도 구경보다는 주린 배를 채울 기회로 나들이가 기다려졌기에 생긴 말이지 싶습니다. 이처럼 고되고 허기진 일상 중에 시름을 잊고 바깥바람을 쐬면서 무엇으로든 배를 채우고 싶었던 옛 사람들의 애절하고 애틋한 풍속이 오늘날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휴가 문화로 변질 계승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관광지마다 어지러이 얼룩덜룩, 들쑥날쑥 가로 세로로 얽혀 있는 대문짝만한 식당 간판과, 진입로에 진을 치고 있는 장사치들, 거기서 발생하는 소음 등을 싫다 하면서도 막상 고즈넉이 유적지만 마주하게 된다면 서운한 마음이 들지도 모릅니다.
 
간판 꼴은 보기 싫지만 먹기는 잘 먹어야 한다는 모순된 생각으로는 개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산과 계곡에서 취사를 한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듯이 관광지 문화도 점차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휴가 문화는 여전히 번잡스럽고 군더더기가 많아 보입니다. 당장 이렇게 바꾸자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더 쾌적하고 더 품위 있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국민 의식 수준과 문화적 안목에 달려 있습니다. 단순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이 관광 분야에도 적용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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