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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1-13 16:35
어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
 글쓴이 : 신 아연
조회 : 5,295   추천 : 0  

지난달 19일에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15일 추석에 차례 지낸 뒷정리를 하시다 그만 넘어져서 고관절이 골절됐고, 연휴가 끝나자마자 수술을 받으셨지만 그 길로 깨어나지 못하셨습니다. 병원측의 과실이 컸던 것 같습니다. 84세 고령이었지만 웃으며 수술실로 들어가신 분이 두어 시간 후 중환자실을 거쳐 다시 두 시간 정도 지나 영안실로 가버리신 겁니다. 모두 19일 하루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 정도 준비되고 예고되는 죽음에 비해 어머니의 그것은 너무 급작스러워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가 어느 순간 면을 뒤집는다는 것을 실감했을 뿐입니다. 솔직히는 황망하기만 하다가 이제야 조금씩 실감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삶에 대한 의욕은 잠시 접어두고 저는 줄곧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행인을 보면서도 저 사람 집에는 최근에 누가 죽었을까, 저기 저 사람은 지금의 나처럼 ‘죽음보다 깊은 절망’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까, 돌아가신 어머니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 걸까, 어딘가에 계시긴 계시는 걸까 하는 상념으로 하루를 맞고 하루를 보냅니다.
 
저는 죽음에 관한 이론서를 하도 많이 읽어서 머리로는 마치 ‘죽음도사’가 된 듯하고 죽음에 대해 다 알아버린 것 같고, 그래서 죽을 때 무섭기는커녕 되레 호기심이 일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물론 머리의 일 일뿐이겠지만요.
 
책뿐만이 아닙니다. 습관적으로 죽음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니, 지인이 저에게 이런 조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무조건 앞만 볼 게 아니라 이따금 뒷거울도 보고 양편 거울도 봐야 사고 위험이 낮듯이, 삶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을 자동차 운전 시 전방 주시라 할 때, 후방과 좌우를 살피는 것은 이따금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대비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앞, 뒤, 좌우를 모두 살피는 것이 운전의 기본이듯이 삶과 죽음을 함께 아우르는 자세가 올바른 태도이다. 하지만 앞보다 뒤를 더 자주 본다거나 계속 양 옆을 힐금거린다면 주행 자체에 방해를 받아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진다. 죽음을 너무 자주 생각하다가는 삶이 망가진다는 의미다.”
  
그러니 어디까지나 전방, 즉 삶에 치중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은 때가 때이니만큼 다시금 ‘뒷거울’에 눈길을 더 자주 주고 있습니다. 죽음을 소 되새김질 하듯 사유하고 반추하다 보니 살아있는 한 죽음에 대해서는 결코 알 수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경험적으로 알 수 없는 일은 두렵거나 아니면 신비롭습니다.
 
죽음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죽음에 대한 담론이나 이론들로  완전 무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아도 막상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게 되면 마치 화폐개혁 후의 구권(舊券)처럼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고,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일이 아닌 것을 이 세상의 방식으로 대처하려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떠나보내는 것,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도 죽음 그 자체에 대한 내용이 아닌, 남은 자, 즉 산 자의 몫일 뿐입니다. 잘 사는 길만이 잘 죽는 길이라는 다독임도 역시 삶을 강조하기 위함이지 죽음 편의 말은 아닙니다. 죽음에 관한 진정한 이야기는 죽은 자의 몫이며 그 이야기는 산 자에게 들려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어머니 돌아가신 후 죽음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이런저런 책을 뒤적이거나, 주변 사람을 붙잡고 죽음을 대화 삼고 싶어 합니다. 그중에 2300년 전 장자가 한 말이 가장 위로가 됩니다. 죽음이 난무하던 전국시대, ‘어느 날 장자가 초나라로 가는 길에 바싹 말라 굴러다니는 해골을 보았다.’로 시작되는 이야기 말입니다. 해골은 지금 모든 속박과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면서 세상으로 다시 오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야기 속의 해골처럼  제 어머니 역시 할 수 있다 해도 안 돌아오고 싶다고 하실 것 같습니다.  살아 고생은 그것으로 충분했으니까요.
 
전쟁이 잦은 때에 해골이 길가에 나뒹구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장자가 해골을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그대는 삶의 욕망을 지나치게 추구하다가 도리를 잃어 이렇게 되었는가, 아니면 나라가 멸망해서 죽었거나 형벌에 처하여져 이렇게 된 것인가. 또는 좋지 못한 짓을 저지르고 부모나 처자 볼 면목이 없어 목숨을 끊었는가. 추위와 배고픔에 떨다 이렇게 되고 말았는가. 아니면 수명이 다하여 죽은 것인가.”
그리고는 해골을 베개 삼아 잠이 들었는데 해골이 꿈에 나타나 말했다. “그대는 변사처럼 말도 잘 한다. 그런데 그 말은 모두 산 사람의 걱정거리일 뿐, 죽음의 세계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군주도 없고, 신하도 없다. 시간의 한계도 없다. 그저 하늘과 땅을 무대로 영원의 시간을 산다. 장구한 시간을 봄, 가을로 삼으니 제왕의 즐거움도 죽은 자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장자는 믿을 수 없어 다시 물었다. “만약 생명을 관장하는 신에게 부탁해서 다시 한 번 그대에게 살과 피를 주어 당신이 살던 고향집으로 돌려보내 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해골은 펄쩍 뛰며 대꾸했다. “내 어찌 이 지고(至高)의 행복을 버리고 산 사람의 괴로움을 다시 겪겠는가.”  - 박희채 <장자의 생명적 사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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