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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2-26 14:47
책을 읽겠느냐, 짐승의 길을 가겠느냐
 글쓴이 : 신 아연
조회 : 9,298   추천 : 0  

“오늘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이 아수라의 혼란도 따지고 보면 국민들이 책을 읽지 않고 사유하지 않아서 벌어진 것이 아닐까요?”
 
‘이 사달’이 나던 초기에 공영 방송사 뉴스 해설위원이자 시인인 지인이 제게 대뜸 이런 SNS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제 말이 그말입니다.”라고 답을 보낸 게 한 달 전, 이번에는 블로그 이웃이 ‘빼어난 반면교사’라는 제목으로 “우리는 참 좋은 대통령을 두었다. 책을 읽지 않고 TV를 가까이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글을 쓸 줄 몰라 남에게 맡겼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몸소 보여주니.” 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글은 더 이어집니다만 두 사람이 책과 글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을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꼽고 있는 것에 큰 공감이 갔습니다.
 
앞서 말한 방송사 지인의 SNS 프로필에는 “책을 읽겠느냐, 짐승의 길을 가겠느냐”는 상태 메시지가 떠 있습니다. 골수를 쪼개듯 섬뜩하리만치 선연한 이 말은 고산 윤선도의 후손이자 윤두서의 현손인 윤종문에게 주는 다산의 글에 나옵니다. 선비의 생업과 독서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글 내용의 마지막에 나오는 이 문장을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정민 교수가 쓴 <다산 교육법 –돼지의 즐거움>에서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면 그것은 짐승과 다를 게 없다. 굶고 살 수는 없으니 원포 경영을 통해 기본적 생계의 문제를 해결해라. 그 방법은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다. 생계는 안 돌보고 공부만 하겠다는 것은 무모하고 무책임하다. 그렇지만 생계를 위해 공부를 놓겠다는 것은 배부른 돼지가 되겠다는 것과 같다. 너를 구원해 줄 것은 오직 독서뿐이다. 책을 읽겠느냐? 짐승의 길을 가겠느냐?”
 
원포란 과실나무와 채소 따위를 심어 가꾸는 뒤란이나 밭을 의미합니다. 그곳에서 입에 풀칠 할 정도의, 입벌이 수준의 소출을 낼 수 있었을 테지요. 글을 좀 더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어떤 삶을 원하는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산다. 추운 겨울에는 갖옷을 입고 더운 여름에는 잠자리 날개 같은 고운 베옷을 입는다. 이렇게 살면 흡족할까? 비취새와 공작새도 비단옷을 입고, 여우와 살쾡이, 담비와 오소리도 갖옷을 입는다. 그게 무슨 대수인가. 그렇다면 맛난 음식은 어떤가? 끼니마다 산해진미가 밥상에 오르고, 기름진 고기요리가 빠지지 않는다. 평생 배고픈 줄 모르고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마음껏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기를 배불리 먹는 것은 범이나 표범, 매나 독수리 같은 짐승들이 늘 하는 일이다. 대단할 것이 하나도 없다. 어여쁜 미인의 가무 속에 늘 잔치하며 근심을 모르고 산다면 어떨까? 그것도 허망하다. 미인의 고운 자태는 얼마 못 가 주름이 지고, 흥겹던 음악과 즐겁던 자리는 자취도 없다. 절세의 미녀도 물고기가 보면 놀라 달아나기 바쁘다. 평생 먹이만 보면 주둥이를 박아대는 돼지의 삶이 그토록 부러운가? 그 옛날 부자 석숭의 별장이 있던 금곡에서의 흥겨운 잔치와 소제에서의 즐거운 자리에 지금 무엇이 남아 있는가?
우리가 믿을 것은 독서뿐이다. 책 속에는 없는 것이 없고 할 수 없는 일이 없다. 성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고, 백성을 교화할 수도 있다. 귀신의 일을 알 수가 있고,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수도 있다. 책을 통해 우리를 들어 올리면 무엇이든 다 할 수가 있다. 그저 배부르고 등 따스운 돼지의 삶에 더는 눈길을 주지 않게 만든다. 나는 네가 독서를 통해 대체를 기르는 대인이 되면 좋겠다. 의복과 음식을 탐하고 여색에 마음을 빼앗기는 소인배가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배불뚝이 부자로 살다가, 죽은 몸뚱이가 식기도 전에 이름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짐승일 뿐이다. 그런 짐승의 길을 자랑스러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게 되기를 바란다.”

 
인용이 길었습니다만, 저의 두 지인이 절박하게 강조한 '독서의 필연성’을 전하기에 이보다 더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옛 시대, 옛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라며 콧방귀를 뀌어야 할까요? 하지만 글에서 묘사하고 있는 ‘돼지의 즐거움’에 빠져 있기는 지금 사람이 훨씬 심합니다.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차 굴리고, 아파트 평수 넓히기에 평생을 걸고, 그게 곧 사는 것이라며 '돈, 돈' 하는 사이사이 ‘바보 상자’앞에 앉아 생각하고 사유하는 뇌의 기능을 증발시켜 갑니다.
 
박근혜 대통령만 저능이고 무뇌인 것이 아니라 그가 그런 사람인지 몰랐으니 우리 또한 머리가 모자라긴 마찬가지입니다. 속된 말로 무식하면 용감하니, 무식한 우리들이 용감하게도 그런 사람을 대통령 자리에 앉혔습니다. 국민 모두가 대통령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지금, 나머지  손가락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책을 읽지 않고 생각을 않으니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고, 우리 또한 책을 읽지 않고 생각을 하지 않아 함께 이 지경을 맞았습니다. 대통령이 한 짓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둔 우리의 책임,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한 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그 배후에는 '돼지의 즐거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 그것이 곧 짐승의 길이라고 한 다산의 일갈에 비춘다면 우리를 두고 개 돼지라고 한 것도 아주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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