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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31 20:58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
 글쓴이 : 신 아연
조회 : 6,049   추천 : 0  

지난달에 제가 쓴 글, ‘책을 읽겠느냐, 짐승의 길을 가겠느냐’에 대해 공감을 표해주신 독자들이 많았습니다. 마치 짐승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아무쪼록 책을 읽어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연한 다짐과도 같이. 그러나 책읽기의 진정한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요? 무턱대고 읽는대서야 뭘 얻을 수 있으며, 독서를 통해 얻어야 할 것은 진정 무엇일까를 새삼스럽게 자문해 봅니다.

동양 철학자 박희채의 <장자의 생명적 사유>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환공이 대청에서 글을 읽고 있는데 윤편이 뜰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환공에게 물었다. “감히 묻겠습니다. 왕께서 읽으시는 책에는 무슨 말이 쓰여 있습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성인의 말씀이다.” “그 성인이 지금 살아있습니까?” “이미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과인이 책을 읽는데 수레바퀴나 깎는 놈이 웬 참견이냐? 그럴싸한 이유를 댄다면 괜찮겠지만 그렇게 못한다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을 미루어 그렇게 말씀드린 것입니다. 수레바퀴를 깎는데, 엉성하게 깎으면 헐거워서 견고하지 못하고, 너무 꼭 맞게 깎으면 빡빡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엉성하지도 너무 꼭 맞지도 않게 깎는 기술은 손의 감각으로 터득하여 마음으로만 알 뿐이지 말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무엇인가 비결이 있기는 하나 제 자식에게도 가르쳐 줄 수 없고, 제 자식 역시 가르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 칠십이 되도록 이렇게 수레바퀴를 직접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 역시 깨달은 바를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맞춤한 수레바퀴의 상태는 오직 숙련된 손의 감각, 느낌이나 마음으로만 알 뿐이지 이른바 ‘매뉴얼’이 만드는 게 아니라고 윤편은 말하고 있습니다. 윤편의 이 말은  권위 있는 사상가나 지도자의 가르침, 명망 있는 상을 받은 서적, 현재 인지도 높은 필자의 저서라는 이유만으로 책을 집어드는 자세를 경계하게 합니다. 아무리 검증된 진리, 인류 문화사의 최고봉에 이른 사상이나 이념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수용하고 그대로 따라 살다가는 거기에 매몰되어 자기를 잃고 삶의 길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윤편의 말처럼  깨달은 자들인  공자, 맹자, 석가, 예수의 사상까지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물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장자 자신도 다 믿지는 말라는 뜻일 겁니다.
 
삶의 길잡이인 매뉴얼, 즉 책을 읽는 것은 개성 있고 독특한 자기 생각, 심도 있고 독창적인 사유와 표현의 집을 짓기 위함입니다. 자기 내면에서 생성된 사유를 통한 힘만이 고유하고 실존적인 개별자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환공이 읽고 있는 성인의 말씀은 그러한 사유의 집을 짓는 재료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만 이어 올린 지붕이나 집채로는 변화하는 시대의 비바람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지식을 위한 지식, 시대착오적 지혜 등에 대해 윤편은 찌꺼기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습니다. 어쩌면 윤편은 소위 먹물들, 가방끈 깨나 긴 사람들의 허위의식, 식자들의 지적 허영심을 지적하는 데까지 나가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지식층의 말과 행위의 불일치, 위선과 몸 사림, 자기 보신 등을 비꼬면서 말입니다.

지인의 SNS상태 메시지에는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은 다르다’ 란 말이 떠 있습니다. 우리의 독서는 길을 아는 것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짐승의 길을 버리고 사람의 길을 찾기 위해 책을 읽되 궁극적으로는 ‘길을 걷기 위해’ 읽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진정 짐승의 길이 아닌 사람의 길을 가는 자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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