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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29 21:15
인생의 두 가지 묘수
 글쓴이 : 신 아연
조회 : 4,770   추천 : 0  

저는 지난해 12월에 난생처음으로 장편 소설을 한 권 냈습니다. 지금까지 칼럼만 쓰던 제가 소설을 썼다고 하니 어떻게 그 일을 해냈냐며 지인들이 축하를 겸해 궁금해 하셨습니다. 저는 그 대답을 책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했습니다. 독자 중에는 그 내용에 힘을 얻어 그간 미뤄 뒀던 일을 해치우게 되었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저와 그분에게처럼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여 좀 길지만 옮겨보겠습니다.

안회가 어느 날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사공이 배를 젓는데 몸놀림이 가히 신의 경지에 달한 듯 보였습니다. 안회가 물었습니다. “배 젓는 법을 내가 배울 수 있겠는가?” 사공이 대답합니다. “물론입니다.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은 몇 번 저어 보면 금방 배웁니다. 잠수에 능한 사람 역시 배 같은 것을 본 적이 없어도 금방 노를 저을 수 있지요.”

그 말이 선뜻 납득되지 않은 안회가 사공에게 왜 그런지를 물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안회는 스승인 공자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공자가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이 배를 저을 수 있는 것은 물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에 빠지는 것이 두렵지 않으니 오직 배 젓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또한 잠수를 할 수 있으면 배가 뒤집히더라도 결코 당황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깊은 물속이 마치 발이 닿는 언덕처럼 여겨져서 배가 뒤집힌 것을 수레가 뒷걸음질 친 정도로 여긴다. 따라서 엎어지든 뒤집히든 물러나든 미끄러지든 어떤 역경과 위험이 닥치더라도 그것들이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그러니 늘 마음에 여유가 있는 것이다.”

『장자』 달생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소설을 쓴 후 장자를 인용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소설이라는 걸 처음 써 보면서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제대로 쓰고 있는지, 제대로 쓴 것인지 스스로 확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쓴 지가 30년 가까이 되고 지금까지 책도 다섯 권이나 냈지만 소설만큼은 이번이 처음이라 두려움과 긴장이 컸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는 헤엄을 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장자의 말대로 소설이라는 배를 무리 없이 저어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저는 글의 바닷속으로 유연하게 들어갈 수 있는 잠수부이기도 하기에 역시 소설이라는 노를 익숙하게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장자가 격려했습니다. 단, 헤엄을 잘 치고 배를 잘 젓기 위해서는 물을 의식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친절한 장주(장자의 이름) 씨는 그 방법도 일러 줬습니다. 즉, 오직 거기에 집중하라는 것이지요. 다만 몰두하고 전념하라고 당부했습니다.

둘째,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를 묻는 안회를 향한 공자의 답(실상은 공자의 입을 빌어 장자가 한 대답이지만)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이기도 했습니다.

배가 뒤집히고 거꾸러지는 등 어떤 역경과 고난을 마주한다 해도 노련한 잠수부나 뱃사공이 그러하듯이, 마음을 흩뜨리지 않고 여유를 가질 것을 장자는 당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장자의 말에 의지하여 소설 쓰기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지만 어찌 글쓰기뿐일까요? 저처럼 자신의 일에 적용하고 응용했다는 그 독자처럼 우리 모두는 노련한 뱃사공이자 잠수부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분야와 인생이라는 물에서 지금까지 익숙하게 헤엄을 쳐왔기 때문입니다.

단, 물을 두려워하거나 의식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장자는 말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중년 이후 세대로만 국한해서 말하자면 백세시대니 노후 준비니 재취업이니 하는 정형화된 틀이나 사회적 구호가 강박과 초조를 부추기며 걱정 근심을 낳습니다.

사는 것에 너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죽을 때까지 뭔가를 성취하고자 집착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자유롭게, 현재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제 경우는 젊었을 때도, 심지어 어렸을 때도 그때그때 주어진 시간을 유영하며 평화롭게 살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더 우스운 것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먹어야 할 음식 목록까지 만들어 실제로 찾아다닌다는 사실입니다. 저라면 죽음의 침상에 누워 남들처럼 세상을 유람하지 못하고 식도락에 빠져보지 못한 것을 한탄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껏 세상을 헤쳐 온 자신의 경험을 신뢰하고 현재의 시간에 집중하는 것, 그것밖에는 인생의 묘수가 달리 없다는 장자의 가르침을 따라 한시적이나마 그렇게 했더니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저는 남은 생의 시간도 그런 자세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올 한 해를 그렇게 보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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