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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14 18:09
지금은 애도의 촛불을 들어야 할 때
 글쓴이 : 신 아연
조회 : 6,500   추천 : 0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선고일 저녁, 동네 도서관 근처 분식집 텔레비전을 통해 발표 상황을 뒤늦게 보았습니다.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한다.”는 선고 장면이 재방송되고 이어 한 시민이 정말 감격적이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인터뷰 내용이 화면에 흘렀습니다.

“감격할 것까지야 있을까? 하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지.” 간간이 텔레비전 화면에 눈길을 주면서 떡볶기를 먹고 있던 옆자리의 두 여고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너희들 말이 맞다.” 나도 모르게 한마디 끼어들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탄핵을 받는 제 나라 대통령을 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축제를 한다는 것이 적절한 반응인가 말입니다. 저는 소위 ‘박사모’도 아니고 그렇다고 촛불을 들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진실을 알고 싶었고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다리면서 이른바 양쪽 진영을 아프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촛불 집회에도 참석하고 태극기도 흔들어 봤다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저처럼 뭐가 옳은지 잘 모르겠어서, 어느 쪽이 진실된지 알고 싶어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가장 정직하고 심지어 용기 있는 모습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한 오리무중을 겪은 후 대통령이 탄핵되는 쪽의 결론을 받아들이게 되었기에 ‘한숨 섞인 안도’의 마음으로 사필귀정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촛불의 승리’라는 말은 듣기 거북하고 불편합니다. 게다가 떠들썩한 축제까지 이미 한 판 벌였고 앞으로도 종종 그럴 것이니, ‘촛불’ 측은 지금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 앞에서 탄핵에 불복하는 사람들의 행위를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팽팽한 대결 구도에서 한쪽이 축제 무드라면 다른 한쪽은 초상집 분위기인 것이야 당연하니까요. 같은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뿌리는 ‘애국심’으로 같은 것임에도 심리적 현실은 외부의 적을 대하는 것보다 더 서로가 서로에게 살벌한 상황입니다.

노자는 도덕경 31장에서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미화하거나 도취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결국 사람 죽인 것을 즐거워하는 꼴이기 때문이라면서. 어떤 전쟁이든 사상자를 내게 된다는 점에서 이긴 쪽이라 해도 애도로 뒤풀이를 해야 하는, 즉 상례(喪禮)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겼다 해도 승전가를 불러서는 안 된다는 노자의 가르침을 외면한 채, ‘광화문’ 측은 ‘시청’ 쪽을 촛불의 온기로 보듬지 못했습니다.

요즘 저는 미국의 남북 전쟁을 배경으로 한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다시 읽고 있는데 패배한 남부인들이 북부 사람들을 ‘양키’라고 부르며 철천지원수로 여기고, 북부인들은 흑인 노예를 부린 남부 사람들을 인간 백정 쯤으로 취급합니다. 남부가 다시 연방에 복귀하기까지 10여 년간 분열과 진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지금 우리 처지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실망스럽고 우려스러운 점은 자아에 매몰된 어린 아이 같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미숙하고 어리석은 생각과 말과 행위입니다. 그에게 국민은 누구이며, 국민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비대하고 왜곡된 자의식으로  꽉 차서 ‘박사모’조차 받아들일 공간이 없어 보이니, 대한민국 사람 중에서 가장 애국심이 없는 사람이 그가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사태를 직시하는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적어도 사저 앞에서 소란을 부리는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서 더 이상의 분열을 일으켜서는 안 되겠기에 말입니다. 더구나 핵심 친박들을 중심으로 다시금 정치 세력을 모을 조짐이 보인다니 박 전 대통령의 미숙함의 정도가 퇴행 수준으로 가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통나무를 굳이 자르지 않는다고 노자는 말합니다. 또한 잘랐다 하더라도 그것은 원목으로 다시 돌려놓기 위한 진통이자 부득이한 과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박근혜 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등의 모호한 말로 나라와 국민의 마음을 더 이상 자르고 쪼개지 마십시오. 또한 대다수 국민들은 ‘떡볶기 여학생들’의 말처럼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승리에 도취해서는 안됩니다. 지금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비극이자 국가적 고통을 상례의 기간으로 애도하면서 상처를 싸매고 화합으로 거듭나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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