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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8-21 20:52
전쟁의 와중(渦中)에서 맴돈 80여년 체험
 글쓴이 : 김연려
조회 : 5,722   추천 : 0  


시드니 항을 강습한 일본 22호 소형잠수함 사령탑과 선체 일부
시드니 해군군항내에 위치한 해군유물전시관에 전시되여있다.
 
하와이 기습으로 태평양전쟁 발발
 
1941년 12월 8일은 72년이란 긴 세월이 지나서도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날로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황해도 중심부에 자리한 소도시에서 한의(韓醫) 가정의 5남매 중 3살 손위의 누님 다음의 장남으로 당시 13세 소학교 5학년이었다. 그날 오후 늦은 시간에야 일본 해군의 하와이 공습과 특수 잠수정의 진주만 공격 사실을 알게 됐다.
 
다음날 이른 아침 어머니(38세)와 부엌에서 솔 나무 잎과 가지로 된 땔감을 아궁이로 넣으며 전쟁 이야기를 했다. 황해도 내륙의 한 겨울은 몹시 추웠다. 여학교 2학년인 누나는 부엌에 잘 안나 오고 아침이면 내가 자주 부엌에 들어갔는데 이날 아침 모친께서는 중일전쟁으로 힘겨운데 또 새로운 전쟁인가라는 의아심이 있는 눈치를 보이셨다.
 
일본은 외교 통로의 실수로 하와이 기습공격 후에야 선전포고문서를 미국에 전달하는 시작부터 신의 없는 망신을 했다. 하와이 진주만 군항에 정박 중인 미 해군 함대에 일본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전폭기의 공습과 함께 2명이 승정한 길이 24m인 5척의 소형 잠수정도 진주만에 침입했다. 그러나 4척은 미 해군의 순시 함정들의 공격으로 침몰되고 1척은 해변에 좌초하여 장교인 정장만이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서 포로가 됐다.

일본은 하와이 공습 직후 승전나팔 소리와 함께 특수 잠수정 5척의 전공을 앞세워 9명에게 군신(軍神)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2계급 특진을 발표하며 대대적인 승전 축하 행사를 거행했다. 그러나 전후의 평가는 5척의 잠수정의 전과는 전무했다. 반면 해전전술에서 태평양 전쟁부터 주력함이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바뀌는데 하와이 공습 전날 3척의 미 항공모함 모두가 출항해 공습에서 살아남는다. 이 행운이 미일 전쟁의 갈림길이 되고 종국에 미국이 축복을 받은 승전국이 됐다.
 
실종된 일본 24호 특수잠수정 발견?
 
지금부터 71년 전인 1942년 5월31일 밤 늦게 3척의 일본 잠수정이 시드니 내항에 잠입을 했다. 하와이에 이어서 2번째 출동이다. 그러나 27호정은 시드니 입구에 설치된 대잠수함(對潛水艦) 방어망(防禦網)에 걸려 2명의 승조 장병은 자결했고 22호정은 호주 경비함의 폭뢰 공격으로 침몰하며 자진(自盡)했다. 24호정만이 내항으로 침입하여 정박 중인 미 해군순양함 시카고(Chicago)함을 조준하고 어뢰를 발사했으나 빗나가고 해군 부두에 계류중인 해군 용역선 쿠타불정(Kutabul)에 명중해 21명의 수병들이 전사했다.
 
 

 
2002 61일 호주해군기지에서 KUTTABAL 침몰 60주년 추모식이 거행되었다.
생존자 2(좌측) 과 한 전사자 L.R. Jamieson의 누이동생 Grad Grace 여사(우측)은
기차로 12시간 걸려 달려왔다. 화환이 있는 석조 추모비 일본 24호 잠수정의
공격으로 호주수병 19명 영국수병 2명이 전사했다. 
 
유일하게 내항까지 침입하고 공격을 끝낸 24호 잠수정은 또 한번 기적적으로 시드니 항에서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후 64년간 행방이 묘연했다. 이상이 필자가 2006년 5월26일 발표한 ‘시드니 해전 뒤에 남겨진 두 여인의 눈물’에 담긴 글 내용의 일부이다. 그런데 뜻밖에 반년이 지난 2006년 11월26일 채널 9 방송의 ‘60분’ 프로에서 행방불명인 24호 특수 잠수정일 가능성이 높은 침전물을 수중호흡기를 소지한 지방 잠수동우회회원 들이 55m의 잠수가능 수심에서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시드니 해전 뒤에 남겨진 두 여인의 눈물”에 발표된 글은 신문 말고도 웹사이트 “hojugiltra.com - 시드니 만보”에도 발표했는데 방문자가 4,088명이었다. 신문 독자와 <시드니 만보> 방문자에게 새로운 M-24의 잔해발견 사실을 알리고 싶었는데 증거가 될 사진을 구할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자상하게 안내해준 지역 주민 마크 페이씨(Mark Pey, 모나베일)
 
일본잠수정 24호 추모현판(懸板) 제막
 
2012년 5월28일은 일본 잠수정이 시드니항에 침입한지 3일이 모자란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시드니의 유력지 시드니모닝헤럴드지에 24호 일본 잠수정의 소개와 모나베일 헤드랜드(Mona Vale Headland)에서 현판 제막식이 열리며 로빈 파카(Hon Robyn Parka) 헤리티지담당 장관이 제막을 한다는 기사가 2면에 걸쳐 소개됐다. 필자는 비록 제막식에는 참석할 기회를 못 잡았지만 기회를 봐서 눈에 보이는 현판 사진을 얻을수 있게 되였으니 사진은 해결됐다.

금년 5월8일 날씨도 맑고 화창해 아침부터 서둘러 그간 수집된 3개의 신문과 인터넷 복사판 등을 갖고 시티의 윈야드역에서 12시 넘어 급행 L88 버스로 1시간이 한참 넘게 달려서 모나베일 리저브(Mona Vale Reserve)로 가는 길목에 도착했다. 우선 해변을 향해 15분 걸어 바닷가를 살폈는데 전시판이 안 보였다. 다행히 초로의 키가 큰 주민을 만나 문의하니 운동을 위해 나왔다면서 친절히 나를 안내했다.

샛길로 가파른 언덕 길로 들어가 50미터 되는 언덕 위에 가려있던 반대편에 기대보다 작은 금속현판으로 안내했다. 크기는 가로 1m, 세로 1.2m가 되고 금속판에 잠수정 정장과 하사관 2명의 사진이 있다. 그리고 자상한 경위가 설명되어 있었다. 하단에는 70주년을 맞이하여 로빈 파카 유물담당장관에 의해 제막됐고 해도(海圖)에는 침몰 위치가 표시되어있다. 현판 있는 현 위치에서 잠수정까지의 거리는 3해리(海里) (5 km)라고  기록됐다.
 
 
종전을 향한 태평양전쟁
 
하와이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고 4년이 지나자 전세는 미국의 승리로 매듭이 지어질 여건이 됐다. 일본은 군부 등의 반발 등 내부적으로 아주 힘든 결정을 내리고 전쟁종결의 중재(仲裁)를 하필이면 소련에 의뢰하는 외교적으로 최악의 선택을 했다. 만일 이때 스위스나 북구의 중립국에 의뢰했다면 태평양 전쟁의 종결은 물론 소련의 참전없이 전쟁은 종결됐고 한국은 38선 없는 해방을 맞았을 것이다.

소련은 일본과의 불가침조약을 불과 3개월 전에 폐기했고 독소(獨蘇)간의 전쟁을 끝내면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하여 전후의 큰 보상을 꿈꾸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 항복을 소련 참전 후에 성사시킬 목적으로 항복 중재를 일부러 지연시켜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미국은 더 이상 장병들의 손실을 미일전쟁에서 막기 위해 빠른 항복을 기다리다가 지연되자 히로시마, 나가사끼에 원폭투하를 강행했다.
 
미소의 속 샘이 따로 있다 보니 속담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 그대로 한국은 38선 분단의 멍에를 걸머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18세에 단신 월남하고 지금까지 65년간 이북가족에 대해 하나도 아는 것이 없는 이산가족이 됐다. 부끄럽지만 장남으로 몇 년을 혼자 뛰다 보니 부모님의 생신 날까지 잊고만 불효자가 됐다.

호주인들이 잊지 못하는 산타칸의 비극
 
 
버우드(BURWOOD) 공원 산다칸추모대에서 거행된 산다칸 추도식
2009년8월2일에 거행된 산다칸 추모식에 참석하여 촬영한 사진이다.
 
금년은 한국전쟁 휴전 60주년이다. 7월27일 오후에 시드니 시내에 근접한 무어 파크(Moore ParK) 한국전 참전기념비를 방문하고 바로 버우드 공원에 SANTACAN 추모대를 찾아갔다.
싱가폴에서 포로가 된 호주와 영국포로 2,428명이 비행장 건설을 위해 싱가폴 포로수용소 에서 산타칸(SANTACAN)으로 이송됐다. 일본측의 학대와 가혹한 노동과 영양 부족 그리고 말라리아 등 질병으로 절반인 1,170명이 산타칸에서 사망했다. 

전세가 기울자 260km떨어진 라나우(Ranau)로 잔류 포로 전원을 강행군으로 이동시키면서 낙오 포로는 가차없이 사살했다. 다행히 행군 도중에 도망친 6명만이 전후에 구조되어 강행군으로 1,250명이 사망하여 산타칸의 포로는 다 희생된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책 Sandakan THE LAST MARCH의 책 말미에 사망자 명단이 148쪽에서 181쪽까지 33쪽에 걸쳐 가득히 인쇄 되어있다. 저자의 이런 다수의 명단을 게재한 의도가 마음에 와 닿는다.

전후에 다량의 말라리아 특효약인 키니네가 대량 보관된 것이 발견되었다. 필자는 호주 전국 6개 도시에 산타칸 추모대가 있는 이유를 알게됐다. 시드니에서 3시간 넘는 기차 여행으로 뉴캐슬행 전철을 타고 가서 다시 헌터선(Hunter Line )으로 환승해 메이트랜드(Maitand)란 자그만 시골 도시를 가면 시드니와 꼭 같은 추모대가 있다.

호주군이 자랑하는 코코다의 오솔길에서 일본군 정예부대를 퇴각시켰다. 시드니 콩코드 병원에서 출발하는 22 격전지중 대표적인 지점으로 사진에는 3개의 판화만이 보인다.
코코다(KOKODA)의 한판 승부
 
콩코드 종합병원에서 800 미터 거리에 코코다 오솔길(산책로)이 있다. 1997년 8월15일에 개통했는데 코스가 울창한 숲과 나무사이를 지나면서 격전지의 전시대가 만들어졌다. 각 격전지 코너 앞에 자리하면 자동으로 2분간 전황을 듣는 마이크가 마련되어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당시 호주 보호령인 PNG에 일본군 5,000명이 부나(Buna)에 상륙하여 단시일 안에 수도 포트모레즈비를 점령하면 바로 호주를 위협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2,190m의 고지인 오웬 스탠리 산맥의 협곡은 한 명 정도가 통과할 수 있는 오솔길로 매우 험란했다. 또 굶주림 때문에 250km 중 나머지 42km지점에서 호주군은 1942년 9월 4개월만에 일본군을 후퇴시켰다. 그것도 439명으로 10배가 넘는 정예 일본군에게서 자신의 영토를 지켜낸 것이다. 아마도 코코다는 2차 대전 중 호주군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준 전투였다.
 
전쟁의 와중(渦中)에서 맴돈 80여년
 
한국전쟁 참전유공자이기도 한 필자는 88년 호주로 이민을 와서 호주 시민으로 정년 후 17년동안 호주 속의 태평양전쟁 테마의 특집을 12편 그리고 한국계 호주시민의 눈으로 한-호간의 한국전쟁관련 특집 22편을 발표하면서 호주국민의 전쟁개념을 조금은 이해가 된것 같다. 결과적으로 개인적으로는 호주에서 소중한 기회를 갖고 살았다는 여건이 고맙기만 하다.
 
필자가 출생한 1931년에는 일제의 ‘만주(滿洲)사변 소학교 입학할 때는 ‘중일(中日)전쟁 그리고 소학교 5학년 때 태평양전쟁 발발 중하교 2학년에 태평양 전쟁 종결과 한반도에 38선 분단 그리고 1948년 교회 출석으로 어려움을 당해 서울로 단신 월남 대광고 편입과 졸업 1950년 해군사관학교 입교 후 10일만에 6.25 한국전쟁 발발 등 끝도 없이 전쟁이란 말과 글자가 뒤 따랐다.
 
그 후에도 21년간 해군에서 그리고 18년간 상선 근무를 통해 덤으로 세계의 전적지(戰績地)를 보며 전쟁에 관한 시야가 얼마간 넓어진 것 같다.  자국의 국토에서 전쟁을 해본적이 없는 호주로 이민오기 까자 전혀 상상도 못한 것이 바로 호주에서 전쟁에 대한 글을 게속 쓰게된줄은 몰랏다는 사실이다. 호주로 이민왔어 한국서 따라다닌 전쟁이란 단오가 무슨 속편이라도 되는양 호주생활 25년간도 전쟁을 주재로 글을 쓰다보니 지난 80여년간 한결같이 전쟁의 와중에서 살아온 셈이다. 노령인 필자가 지난 삶을 조용이 뒤돌아 보니 나 자신이 지구촌에서 흔치않는 기회를 갖고 산 존재라는 것을 이제서야 담담히 자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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