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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1-09 04:35
다만 말을 하지 않을 뿐
 글쓴이 : 백동흠
조회 : 974   추천 : 0  


다만 말을 하지 않을 뿐

 수필가 / 뉴질랜드 백동흠


9월 늦자락에 만남의 꽃이 만개했다. 녹 초록, 뉴질랜드의 싱그러운 계절이 빛났다.

몇 부부가 저녁을 함께 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 달간 걷고 돌아온 지인 집에서였다. 잔디 깎은 뒤 나는 풀 내음으로 뉴질랜드의 생기가 물씬 풍겼다. 잘 차려진 바비큐 숯불 구이 음식이, 좋은 분위기 속에 그 맛을 더했다. 온 세상을 삼킬 듯한 주홍빛 석양기운이 현실과 꿈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다. 단연 화제는 기운이 넘치는 여행 이야기였다. 칠십 넘긴 나이가 무색해 보였다. 지난해, 자영업을 하면서 한 해를 안식년으로 비워두었단다. 평소 원하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거였다. 듣고 상상만해도 쿨했다. 자신의 칠십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진 안식년! 떼어둔 시간이었다. 모처럼 자신에게 선물을 안겨준 시간 같아서 가슴이 떨렸다고 했다.

한 해를 낯선 곳에서 보내며 겪은 여행 이야기가 숯불 고기 위에서 지글거렸다. 레드 와인 잔이 쉴 새 없이 비워지는 속에, 숙성된 맛이 온 몸을 뜨겁게 데워 주었다.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 고원지대, 포도밭 위에 자리한 이라체 수도원 에서 마시는 와인 맛이었다. 함께하며 먹는 스테이크 맛도 좋았고, 나누는 온정도 풍성했다. 좋다고 믿는 일에 소신껏 전력투구하는 모습이 순레자의 기상이었다. 주변에 즐거움과 유익함을 안겨주며 나눔 속에 사는 이, 따뜻한 가슴이 넉넉해 보였다. 가슴이 떨릴 때 여행도 떠나야 한다고 가슴에 강조를 했다. 다리가 떨리 때는 그 맛이 안 난다고.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대목이 아직도 귀에서 맴돌았다.

-순례길이다 보니 일부 성직자도 있었어. 대부분은 일반 여행자였지. 외국에서 온 한 사제가 사제복을 입고 순례길을 걷고 있었어. 아무도 이야기를 붙이지 않더라고. 웬, 순례길에 사제복장까지 하고 걷나? 하는 시선들이었으니까. 그는 혼자서 묵묵히 계속 걸었어. 숙소 옆 식당에서도 혼자 음식을 먹었지. 순례자들은 그냥 그 사제를 지나쳤어. 순례중 우연히 한국 젊은 청년을 만났어. 이야기하다 보니 그도 사제였어. 일반 등산복 차림이라 몰랐지. 수도회 소속 사제였던 거야. 열린 마음의 사제였지. 얘기를 나눠보니 소탈했어. 외국 순례자들도 모여들어 이야기 꽃을 피웠지. 부족한 언어는 문제되지 않았어. 나 이런 사람이오, 라고 보여주는 듯한 사람에 무반응하고 마는 순례객 들 이었지. 그저 보통 사람이오, 라고 보여지는 듯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서는 발길들 이었지. 세상이치가 그리 통하나 봐.

여행을 마친 그가, 자신도 평소 나, 이런 사람이오. 라고 어딘지 모르게 남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었나? 자신에게 묻고 다짐한 순례길. 다음부터 그저 평범하게 보여지는 사람이 되길 가슴 깊이 다졌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뉴질랜드 이야기로 바뀌었다. 올해 자영업 환경, 장성한 자녀 이야기, 건강 문제, 교민사회 이야기….

막바지에 고국의 정치, 일본 이야기가 나왔다. 기득권과 변화를 바라는 이들간의 끊임없는 충돌, 둘이서 싸우는 걸 들어보면 끝이 안보였다. FINISHED 와 COMPLETED 가 서로 잘 났다고 싸우는 형국이었다. 두 단어의 차이만큼 애매했다. 끝장이냐, 완결이냐. 세상에는 옳고 그름의 잣대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진정한 변화를 위해 한 발씩 나아가는 대승적 뚜벅 이 진척이 필요한 것. 멀리 하늘에서 이런 걸 바라보면, 1년 뒤 되돌아보면 객관적인 모습이 보일 텐데. 가장 큰 문제는 이걸 다루는 언론이었다. 제목을 뽑아도 너무 선정적이었다. 팩트는 실종되고 그럴듯한 의견이 팩트로 둔갑되었다. 펜의 힘과 정론이 실종되었다.

처음부터 묵묵히 듣고만 있던 연장자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야기를 하나 꺼냈다.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옛날에 말야, 무대포 고집쟁이와 자칭 똑똑이가 있었어. 어느 날, 말 싸움이 일어난 거야. 고집쟁이는 4 X 7 = 27이라 부득부득 우기고, 똑똑이는 4 X 7 = 28이라 맞받아 친 거야. 서로 옳다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니 끝이 없잖아. 원님께 찾아가 시비 가려줄 것을 요청했어. 고을 원님은 아주 간단히 판결을 내려 버렸지. "27이라 답한 놈은 풀어주고, 28이라 답한 놈은 곤장을 열대 쳐라!" 곤장을 맞은 똑똑이가 원님께 억울함을 하소연했지. 원님이 혀를 끌끌 차며 말을 했어. " 4 x 7 = 27이라고 하는 아둔한 놈과 맞서 싸우며 시간을 낭비한 죄! 알만한 놈이 곤장을 맞아야지"

보여주는 자와 보여지는 자.

FINISHED 와 COMPLETED

4 x 7 = 27 과 4 X 7 = 28

자기 몸 디딘 처소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꾸준히 가꾸어가는 손길에 눈길이 머문다. 세상과 역사는 공존을 위한 길을 묵묵히 지탱해 왔다. 때론 더디게 돌고 돌아서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다.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은 입으로만 떠들지 않는다. 거의 정답이 28임을 알고 있다. 27이라고 우기는 자에게 다만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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