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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1-21 17:44
형제의 강
 글쓴이 : 신숙희
조회 : 4,354   추천 : 0  
호주 온 지 근 몇 년 동안 한국비디오 한번 제대로 빌려 보지 못하고 살다 육 년 만에 유일하게 본 것이형제의 강이라는 연속극이었다. 그런데 나와 우리 딸들에게 그 연속극은 눈물의 강이었다. 우리의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관계가 학벌위주의 우리 사회 환경과 함께 어떻게 가족 구성원간의 인간성을 파괴해 왔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내게도 형제애라는 문제에서 남에게 말못할 오랜 고통이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우리 속담은 많은 자식을 키우다 보면 꼭 속썩이는 자식이 있거나 부모의 애를 태우는 자식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어에도 황금아이 (golden child) 또는 미운 오리새끼 (black sheep of the family)라는 표현이 있는 걸 보면 가족 가운데 뒤쳐지거나 사랑을 독차지하는 자녀가 있는 것은 동서양이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 역시 일 년 차이밖에 안 나는 연년생 두 딸을 키우면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고르게 분배되지 못하면 두 아이 가운데 한 아이가 자칫 미운 오리 새끼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 (Skinner)의 바람직한 행동강화이론에서도 보다시피 여러 강화인자 중 아이를 계속 칭찬으로 조건화시키다 보면 다른 아이는 상대적으로 비교되는 등의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교육학에서는 이를 희생양 (scape goat) 이라 하는데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한 자식의 희생의 바탕에서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이 성공하거나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의 축제 때 그 해에 제일 처음 난 숫양을 잡아 여호와께 번제로서 드리는 것에서 유래한다.
아들 둘에 딸이 다섯인 친정 가족 중에서 나는 여형제 중의 황금아이로 나 바로 위의 언니가 미운 오리 새끼가 된 셈이었다. 우리 엄마 말씀에 의하면 위로 딸 셋이 어릴 때 죽었다 하니 언니는 딸 일곱 번째로 태어난 셈이다. 오죽하면 둘러서 아들을 낳으라는 뜻으로 둘레라는 별칭을 붙였을까. 언니 바로 밑에 첫아들 그리고 나 밑에 우리막내 남동생을 낳아 고대하던 아들 둘을 낳으셨으니 바로 밑에 태어난 첫아들에 우리부모의 관심이 온통 쏠리는 것은 당연했고 언니는 태어날 때부터 천덕꾸러기가 될 소지가 많았었다. 물론 우리 부모들은 그렇게 남존여비 사상에 물 든 분들이 아니 었고 아버지 또한 많은 딸을 두셨으면서도 한 번도 우리에게 꾸지람하시거나 큰소리 한 번 내지 않던 좋은 분이었다.
언니는 우리가족 중에서 나 다음으로 못생겼다는 콤플렉스 말고는 별탈 없이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 해 주었다. 부산의 명문 D여고를 들어갈 당시만도 아버지는 언니가 무난히 대학까지 순조롭게 진학하리라고 기대하고 계셨다. 그런데 고2때 언니에게 도둑이라는 누명이 씌워졌고 급기야 언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고 말았다. 늘 빠듯하게 주는 용돈 때문에 내어야 할 학비의 일부를 써버리고 가지고 있던 나머지 돈이 용케 돈을 잃어버렸던 학생의 액수와 비슷하자 담임 선생님은 학급에서 공개적으로 언니를 도둑으로 몰았고, 부서지기 쉬운 사춘기의 자존심으로 충격을 받은 언니는 학업의 흥미를 점차 잃어버렸다.
대학 실패라는 당연한 결과는 언니에게 인생의 실패자라는 또 하나의 절망을 안겼다. 재수시킬 여유가 없었다기보다 농사가 많았던 부모님은 백말띠를 타고난 언니의 자유분방한 고삐를 농사일에 메어두고 싶어 하셨다. 언니와 아버지와의 갈등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고 촌에서 일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했던 언니는 집안일 하나 야무지게 돕지 못하는, 가장 여자답지 못한 아이로 부모의 미움의 대상이 되어 갔다. 그 반면에 나에 대한 부모님의 칭찬은 언니에 대한 구박과 그 강도가 같아져 갔고 언니의 부모님에 대한 반항도 정비례해 갔다. 급기야 아버지는 그 누구에게도 쓰지 않던 폭력을 언니에게 휘둘렀고 돌아서서 가슴 치며 눈물을 뿌렸다. 오죽하면 나 죽어면 세이뒤에 저년을 세우지마라 했을까?.
우리 식구들 모두 언니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여자답지 못하고 칠칠맞은 언니를 모두 미워했다. 그 즈음부터인가 언니의 퇴행(regression)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미숙한 행동들 여러 유치한 짓들, 아무데서나 대소변을 하는 등등 명문 여고를 나온 사람의 짓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행동들을 했다. 아무 소리 없이 집을 나가 장돌뱅이처럼 시장이나 거리를 돌아다니다살그머니 밤늦게 집에 들어와서는 엄마의 속을 휘딱 뒤집어 놓는 말을 하여, 머리채를 끄잡히고 실컷 두들겨 맞고도 오히려 미소짓는 피해 학대증세 (masochism)를 보이기 시작했다.
II
다 큰 처자가 대낮에 변소가 아닌 마당의 세면대에서 대변을 보는 행위는, 속에서 억압되다 썩어 문드러진 욕구불만을 식구들 얼굴에다 처바르고 싶었던 심리의 우회적 표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니의 그런 반사회적인 행위의 근원이 관심의 부족, 열등감, 욕구좌절이라는 간단한 원리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부모님께서 아시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적지 않은 농사일에 뼈골이 빠질 정도로 허덕이시며 자식들을 부요케하기에 급급했던 그 분들로서는 도무지 이해 안가는 돌연변이였을 테니까 말이다.
나 역시 언니가 불쌍하면서도 언니의 행동이 못마땅했고 그러면서도 엄마의 언니에 대한 태도에 분개했다. 어쨌거나 언니는 근동에서 제일 복 많은 마님으로 통한 엄마와 우리집안의 체통에 완전히 먹칠을 했다.
언니에게 시달리다 지친 엄마는 뜨거운 감자를 손에서 내치듯 홀 시어머니와 두 시누이가 거머리처럼 옆집에 붙어사는 웅덩이 속으로 언니를 집어넣어 버렸다. 당연히 그런 집에서 언니같이 칠칠치 못한 팔푼이가 살아날 수가 없었다. 8개월 된 아이를 뱃속에서 끄집어 내버리고 버림받은 채 친정으로 돌아온 언니는 심한 신경불안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에 대한 적개심, 대학실패에 따른 패배의식, 도둑누명을 씌운 선생님의 비인격성, 자기를 이용만 하고 차버렸던 남자들에 대한 배반감은 얼기설기 쌓여 용암이 흘러 넘치듯 언니의 가슴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땅바닥에 침을 뱉는 횟수가 늘어나고 누군가와 이유 없이 맞붙어 싸우는 횟수도 늘어났다.
옛날 소박맞은 여자가 성황당 고갯마루에 숨어 있듯 언니도 낮동안 어디엔가 있다가 해가 꼴깍 지고 나면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주린 배를 안고 돌아왔다. 걸신 들린 듯 허겁지겁 밥을 먹으뒤 어김없이 엄마와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말은 멀쩡하여 화살을 과녁에 꽂듯 엄마의 가슴에 따끔하게 꽂고 헤집으면 엄마는 언제나저년이 날 잡아먹으려고 생겼지 자식이 아니고 왠수야 왠수라며 뒤로 나자빠지며 한바탕 악을 써고 나서야 하루 해가 마감되곤 하였다. 오죽하면 엄마는 저게 차라리 도둑질을 하든 화냥질을 하든 밖에 나가 사고라도 저지르면 좋겠다고 하였다. 언니는 사회적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으나 엄마를 피 말려 죽이려고 태어난 듯 엄마 곁을 파리 달라붙듯 맴돌며 괴롭혔다. 정신병원을 들락거렸지만 언니의 병은 부풀어 오른 찐빵처럼 뜬 채 근본적 치유와는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떠돌던 언니는 국민학교도 채 나오지 않은 알코올 중독자인 머슴과 시골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딸 하나 낳고도 그 남자는 술만 먹으면 언니를 때렸고 그때마다 언니는 친정으로 달려와 조금씩 주는 돈과 쌀을 가지고 돌아가는, 쥐구멍 속으로 드나드는 생쥐와 같은 날을 보냈다. 그 시골 머슴이 어느날 갑자기 죽어버리자 언니는 그와의 사이에서 난 딸 하나와도 생이별을 해야 했다. 그것은 친정쪽에서 거둬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뒤 또 이혼남자와 10년을 살다 그 남자도 비명 횡사하고 친정어머니 마저 돌아가시자 혼자서 쓰레기를 주우며 살고 있다
내가 보기엔 언니의 문제는 엄마의 자업자득이나 다름없었지만 부모라는 거대한 거인 앞에 나 또한 엄마를 함부로 비난할 만큼 용기는 없었다. 그 동네에서 가장 부자이며 넉넉하게 베풀기로 유명한 엄마가 유독 언니의 생계문제만은 충분히 도와주지 않는 것에 나를 비롯한 모든 딸들은 이해를 할 수 없었고 또 분개를 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식구들은 언니라는 존재를 무시해야 편안할 듯 바쁘답시고 언니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의식 밖으로 밀어 내어버렸다. 최근에 다행히깥이 쓰레기 줍는 노인을 만나 살고 있지만 여전히  언니는  내 보기엔 돼지우리 같은 비참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III
그것은 살만큼 사는 나머지 우리 가족들의 생활과 흑과 백의 차이만큼 큰 대비를 이루고 있다. 더욱이 그러한 현실에 나 자신도 방관자로서 해결사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나를 괴롭혀왔다. 온당하지 못한 처신인 줄 알면서도 부모라는 거대한 거인에 맞닥뜨릴 용기가 없어서 였고,  또한 온 가족의 상처를 벌집 쑤시듯 헤집어 놓기가 두려워서일 것이다. 또한 그런 헤집음이 실제로 언니문제의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결혼생활 순간순간 이혼이라는 극한 상황까지 생각할 정도의 힘든 고비마다 언니를 생각했고 엄마를 생각했다. 언니는 친정으로 당장 보따리 싸고 달려가고 싶은 나를 가두어둔 족쇄고리 역할을 했다. 언니는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돌아서서 흘려야 했던 수많은 질펀하고 마른 눈물을 거두게 해준 사람 이었다.  지금의 내가 행복하다면 그건 순전히 우리 언니가 나 먼저 밟고 간 고통의 궤적 때문이고 언니의 희생 위에 나 자신이 딛고 섰기 때문이다.  
언니만 생각하면 입에든 달콤한 곶감도 쓴맛으로 변했기 때문에 호주로 온 뒤로 멀다는 핑계로 일부러 언니를 내 머리 속에서 밀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떼어낼 수 없는 속으로 곪아 허물어진 고통이요 아픔이었다. 같은 이불 속 남편과도 나눌 수 없는 나만이 가진 허무의 보따리였다. 내가 슬플 때 언니를 생각하면 더욱 슬퍼졌고 내가 인생의 허무를 느낄 때 언니를 생각하면 더욱 허무했다. 그것은 철저한 허무였다. 나의 모든 글쓰는 행위의 밑바닥에는 언니에 기인하는 허무라는 스믈그리는 벌레가 있다. 내가 되지도 않는 영어 공부한답시고 잘 연마하지도 못한 우리말 붓을 끝까지 쥐고 있게 해준 동인인 것이다.
호주의 자유분방한 환경 속에서 클 만큼 크는 사람들을 보면서 언니 같은 종류의 희생자는 별로 없는 듯 보였다. 오늘의 언니를 만든 나를 포함한 모든 가해자와 가해환경을 대신하여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드린다.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반납해야 했던 나의 많은 인생의 부분들을 생각하면 나 또한 희생 양이었지만.
인도의 20세기 최고의 스승 오쇼 라즈니즈가 그와는 너무 대조적인 반풍수 같은 동생 스와미아난다에 대해 한 말을 빌어 나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나는 내 언니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녀가 있었기에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이 우주는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산이 있으면 골짜기가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내가 있기 위해서 언니가 있다. 우리는 음과 양처럼 하나의 종합을 이루고 있다. 우주에는 나 또한 너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는 다만 몸일 뿐이다.”
이 글로써 나는 내짐을 조금이라도 내려 놓고 언니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탕감할까 한다.  가지 많은 나무의 운 없는 희생양의 등을 밟고 쭉쭉 뻗어 간 운 좋은 한 가지로서,  지금 부모가 된 그 때의 가지로서  나도 똑 같은 우를 범하지 않나 두려워하면서 그러나 먼 훗날 언니가 한 생을 마감하게 되면 그녀의 억압과 분노와 눈물과 한숨과 불운의 한 생에 대해서 어느 작가가 노래한 것처럼 그 묘비에 이런 글을 새기리라.
우리 곁의 한 여자가 살며 사랑하며 죽었다.
그 뿐이다.
누구나 살다 사랑하며 죽어간다.
거기엔 의미 따윈 없다.
어느 계곡에선 물이 흐르고 어느 산자락에선 꽃이 진다.
그런 것이다.
그녀가 대저택에 벤츠를 타는 사모님이었든, 장판조차 깔지 않은 흙토방 집에 살았든 특별할 것도 억울해 할 것도 없다.
바람이 소리 내며 불든 소리 없이 불든
미운 오리새끼든 황금 아이든 부모 앞에선 똑같이 소중한 자식이었을 터 돌아가신 부모님의 깊은 속뜻과 그 아픔을 언니나 나나 다른 형제들이 깨닫게 되는 날 우리 형제의 강도 조용히 흐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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