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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7-21 18:05
고향과 아이들
 글쓴이 : 신숙희
조회 : 3,880   추천 : 0  
 호주에서 한국사람들끼리 처음 만나게 되면 주로 ‘고향이 어디세요?’ 라고 묻곤 한다.
호남, 경남, 충청도, 향우회 등의 모임 광고를 이곳 신문에서 본적이 있다. 같은 고향사람을 만나 편한 마음으로 고향에 대한 애수를 돈독하게 나누고 싶어서 일 것이다. 나도 같은 경상도 사람을 만나면 쓰지 않던 경상도 사투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직장에서 혀를 꼬부려 안 되는 영어를 쓰다가 집에 오면 편안하게 고향 말을 주로 하기 때문에 우리아이 들도 한번씩 나의 경상도 말을 따라 한다. “퍼뜩 안하고 뭐하노?” “뭐라카노?”
우리아이들은 어디를 고향으로 생각할까?

고향에 관한 한 나의 정체는 뚜렷하다. 내 고향은 벼 재배로 유명한 김해이다. 그래서 겨울이 다가오는 이맘때쯤이면 끝도 없이 펼쳐진 들판에 갈바리로 뱀처럼 구불구불 선 볕 집단의 행렬과 도깨비불을 피워 까맣게 타 들어가는 풀, 저녁 짖는 구수한 연기 내음이 어우러지다 마지막 붉은 낙조와 함께 사라지는 고요함을 기억한다. 한겨울이면 문풍지가 울어대는 방에서 비닐하우스를 덮을 거적을 만들기 위해 고사리 같은 손이 트도록 새끼를 꼬았다. 봄이면 들판 천지 늘어진 쑥, 질경이, 신네이 등의 나물을 캐기에 바빴다. 날이 좋은 오후는 강둑 너머로 양동이를 이고 낙동강에 몸을 잠그고 조개를 잡던 일들이 기억난다. 여름이면 흐르는 저수지에 첨벙 뛰어들어 개헤엄을 치고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주전자 들고 뙤약볕 속에 숨죽이고 있는 메뚜기를 잡으러 들로 나갔다.

나의 친정은 내가 태어난 후 단 한번도 이사를 한적이 없다. 지금도 헌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었을 뿐 이다. 이제 내 나이 벌써 오 십 중반을 넘기고 있다. 친정 엄마가 십팔세에 시집와 둥지를 틀고 팔십에 돌아간 시기를 감안 하면 아마도 집은 근 백년을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꿈을 꿀 때도 어릴 때의 오래된 친정 집 그리고 마을이 보인다. 새 집이나 바뀐 마을의 모습은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앞마당 오른쪽과 왼쪽에 벼를 저장하던 큰 쌀 뒤지, 파란 대문 옆 담벼락에 서있던 유일한 돌감 나무 한 그루, 부엌 앞의 우물과 물받이, 정지에 아버지가 손수 만든 나무탁자 그리고 겨울에 불 때기 위해 뒷마당에 쌓아 놓은 높은 볏단들, 뒤뜰에 손 큰 엄마가 만든 된장 고추장 김치 등을 담은 크고 작은 단지들 그리고 담 뒤로는 우거진 대나무 밭 뒤로 탁 트인 휑한 김해 벌판.

특히 임신하여 태몽을 꿀 때도 어김없이 옛날 친정 집 뒷 뜰이나 앞뜰 퇴청마루 등이 늘 나타난다. 철 따라 배추, 부추, 상치 시금치, 오이 등의 채소를 심었고 또 토마토, 수박, 참외 등의 과일 등을 키웠다. 그래서인지 첫째 아이를 가졌을 때는 볕 단 사이로 기어 다니던 끊어진 작은 뱀들,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는 친정 집 뒤뜰에 널려 있는 집채 만한 수박, 주먹 크기만한 포도, 토마토 등의 과일이 널려 있는 모습을 꿈에 보았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막내아들을 임신했을 때도 앞 밭에 늘어진 감자 그리고 앞 동네 낡은 교회당 앞에서 큰 개가 갑자기 큰 곰으로 변해 달겨드는 장면을 보았다.

호주에 살며 나는 가끔씩 우리 아이들의 고향은 어딜까 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 한 켠 아스라한 슬픔을 느낀다. 호주로 오기 전 우리는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에 살았다. 당시에 삼십년이 다 된 아파트로 부엌이 푹 꺼져 있고 연탄을 땠다. 위에서 던지는 쓰레기 수거지에서 커다란 쥐가 왔다 갔다 할 정도였다. 거기서 같은 아파트에 두어 번 이사를 했다. 전철 기차 지나가는 소리는 밤낮없이 들리고 공장지대로 유명했던 신림동은 공기가 너무 나빠 두 아이는 비염으로 늘 병원을 다녀야 했다. 덩치가 큰 남자의사는 조그마한 어린아이의 궁둥이에 마구 주사를 놓아, 쓰레기통에 수북히 쌓여 있던 주사기를 보고 큰애는 지레 겁먹어 울음을 터뜨렸다. 그 아파트와 전철이 오고 가는 사이에 큰 둑이 가로 지르고 있었다. 나는 두 딸아이를 데리고 그 둑에 나가 산책을 하며 시를 짖곤 하였다.

호주로 와 처음 울릉공에서 방 다섯 개 짜리의 푸른 잔디가 쫙 깔린 큰 주택, 그 뒤 방두개 짜리 허름한 플랫으로 이사했다. 수목이 우겨져 주위 환경과 경치는 좋았으나 아파트가 워낙 낡아 강구가 집밖 벽에 새까맣게 붙어 있었다. 그 뒤 영주권이 나오면서 분홍색 꽃의 담쟁이가 앙증맞게 올라가는 조금 나은 타운하우스로 이사했다. 울릉공에서 그렇게 팔년의 세월을 보내고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시드니로 왔다. 시드니에서도 서너 번 이사를 더했다. 새 집을 짓기까지 사는 집마다 부엌에 눈만 뜬 작은 새앙쥐가 우리의 식구처럼 붙어 다녔다. 그렇게 환경을 바꿔가며 유년시절을 보낸 아이들의 고향은 어딜까. 우리 딸들이 태몽을 꾸면 어느 장소가 보일까?

고향 말 만들어도 가슴이 설레고 기대감이 밀려온다. 친정엄마가 돌아간 후 고향을 방문할 이유가 사그라졌지만 여전히 마음 한 켠에는 언젠가 돌아가 기댈 수 있는 커다란 품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위로가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 준다.

늦가을 어느 날
스산한 바람이 부는 해 맑은 오후던가
멀리서 차 소리는 아련히 들리고
엄마 아버지는 뼈 빠지게 농사 짓느라
텅 빈 집에서 혼자 남은 아이는 참 외로웠다.
인생이 물처럼 밋밋하고 하품이 나도록 지겨웠다
어느 늦가을 오후 모두 제각기 바쁜 사람들 중에
또 한가로운 나는
멀리서 비행기의 떨림이 울려오는 시드니 에서
뒷뜰 벤취에 앉아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각자 돌아앉아 뭘 하는지도
가물거리는 아지랑이 조차 보이는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 아래서- (16, May, 2013)

이제라도 우리 아이들이 푸근하게 돌아올 수 있는 고향의 땅을 짖도록 노력하리라. 뒷마당에 감나무, 오렌지, 레몬나무들을 심고 부추, 도마도, 상치, 쑥갓, 고추 등 한국채소들을 심으리라. 그래서 호주에 살더라도 한국의 고향을 오래오래 잔잔하게 느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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