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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8-16 21:22
아들과 푸른 사과
 글쓴이 : 신숙희
조회 : 7,874   추천 : 0  
                                                        
냉장고 문을 활짝 열었다. 분명히 뭘 집어낼게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않나 몇 초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요즈음 들어 부쩍 그런 일들이 잦아 졌다. 뿌옇게 김이 서린 냉장고 속의 녹색 사과들이 멍한 눈 안으로 확 들어 왔다. 텅 빈 냉장고 안엔 녹색사과들만 과일 칸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내가 그 사과 대여섯 개를 무심코 끌어안듯 집어내고 있었다.
 
아들은 꼭 ‘Granny Smith'라 불리는 녹색 사과만을 먹었다. 과일의 임금이라고 할 수 있는 사과의 옛말은 ‘능금’이고 순우리말로는 ‘멋’이라 하는 말이 있지만 요즘사람들은 능금 또는 사과라고만 지칭하고 있는 것 같다. 자연에서 자라던 그 조그만 돌능금이 지금은 품종 개량되어서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1000종이 넘는 다고 한다. 사과의 이름도 홍로, 양광, 홍월, 시나도, 스위트, 부사, 후지, 홍옥, 핑크레이디······대부분은 붉은 색의 사과들이다. 그리고 스타킹, 아오리, 토키…같은 노란색 사과들도 있긴 하지만 유독 내 눈에는 초록색 사과만 밟혀 들어온다.
상큼하고 신맛 때문에 나는 샐러드를 만드는 일 외에는 그 사과를 잘 먹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 때문에 굳이 그 사과를빠지지 않고 잔뜩 사서 냉장고에 보관했다. 그러나 올 해초 아들이 집을 떠나버린 뒤로 더 이상 그 사과를 살 일이 내게도 없어져 버렸다.
 
나는 꼭 그 사과를 ‘능금’이라고 부르는 것을 고집했다. 어쩐지 아들이 먹는 그 초록색 능금이 사과의 시조이자 왕이라는 내 나름의 유별난 느낌 때문이다. 다른 사과에 비해 표피가 단단하고, 열이 쪽 고르고, 반들반들한 모양과 투명하고 흠집 없이 빛나는 녹색은 그 사과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처럼 내 눈에 보였다. 과일 가게에서도 그 초록 사과가 빼곡히 진열되어 있으면 가계가 꽉 차 보이고 화려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것들은 기특하게도 쉽게 들뜨지 않은 진중함을 지녔다.
나는 그 초록 사과를 바라보면서 창조의 신비를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한 사과는 아닐 것이란 이중적인 내 믿음은 또 뭐란 말인가.
 
지난주 이스트우드에서 푸른 사과를 심은 날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가했을 때 녹색 사과를 손바닥에 집는 순간 마침 집에 와 있는 작은 딸 편으로 아들에게 보내줄 밑반찬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어서 갑자기 그 생각을 하게 된 자신이 생경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친정엄마를 닮고 싶지 않아서 갓 시집간 딸이 오면 주섬주섬 싼 음식보따리를 떠 안겼다. 내 천성이 친정엄마를 닮았는지 잔정이 없다. 딸에게 음식보따리를 안기는 것은 엄마 속의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항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요즈음은 무엇을 계획한다는 일이 무척 부담스러워졌다. 계획 없이 손님을 맞고 계획 없이 아들에게 보낼 음식을 준비하게 된 것이 훨씬 스트레스가 적었다. 곰국을 식혀 플라스틱 통에 담았다. 아들은 남편을 닮아 곰국을 대단히 좋아했다.
“엄마 지난주에 종도가 우리 집에 와서 월남 쌈을 먹는데 거의 씹지도 않고 번갯불에 콩 볶듯이 다 후딱 먹었어.
둘째 딸이 귀띰해 주었다.
“쯧쯧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불쌍한 것······”
한 보따리를 샀는데도 뭔가를 더 채워야 한다는 강박감이 남았다. 김치 한통, 멸치볶음, 콩자반, , 꽁치 통조림등을 집어넣었다. 뒷밭으로 뛰어나가 끝물인 상치, 고추, 깻잎도 좀 따서 넣고, 당근 양파, 브로콜리, 양배추 등을 넣고, 덩치가 커서 들어가지 않는 것은 잘라서 밀어 넣었다. 딸과 외국 사위에게 먹인다고 만든 마지막 남은 잡채도 긁어 넣었다. 내가 라면을 사지 않으니까 남편이 혼자 먹으려고 숨겨 놓은 라면도 몇 개 쑤셔 넣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라면을 끓여 먹는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라면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마지막으로 녹색 사과를 집어넣는데 핑그르 고여 있던 눈물이 음식보따리위로 뚝 떨어졌다. 막내여서인지 또는 태어나자마자 급성장염으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죽음직전까지 갔다 돌아온 아이여서일까‘소름’ 끼치도록 사랑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먼발치로 사라져가는 해 그림자같이 약해진 기억이지만 아들에 대한 나의 그런 감정은 누구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 깊숙이 간직한 비밀이었다.
 
 달째 보지도 못했다. 더욱이 몇 주째 소식이 끊어졌다. 아니 일부러 연락마저 끊고 지냈다. 통속적인 표현으로 아들이, 아무나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대학의 경영학과에서 삼년씩이나 하던 전공을 그만두고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캔버라의 작은 학교의 스포츠 코치 학과로 전과하여 내려간다고 선언할 때도 별로 힘 안들이고 보내 주었다. 잔정이 없다보니 그렇게 막내를 내 품에서 떠나보내는 것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이년간 객지에서 선교봉사하면서 고생하고 돌아와 엄마 밑에서 따스한 밥 먹고 공부에 열중하며 졸업하고 취직하기를 은근히 기대했던 내게 아들의 결정은 충분한 충격적 선언이었던 것만 사실이다. 그러나 호주에 오래 살은 탓인지 또는 그 정도의 이해심은 있었던지 오히려 자신의 길을 찾아낸 아들의 용기가 한편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엄마의 그늘에 있으면 아무래도 독립적인 남자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아들은 미리 계산하고 일부러 힘들지만 자신의 길을 스스로 걷기로 결정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반항 한번 하지 않고 성장한 자신이지만 머지않아  한계를 피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도 있지만 엄마가 자신을 너무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과잉보호 때문에 자생력이 저해될 것 같은 생각에 부모를 떠나기로 했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긍정적인 이유를 만들어 아들을 이해하려고 했다. 다섯 시에 일어나 혼자 밥해 먹고 오전 여섯시부터 열한시까지 우체국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금요일과 토요일은 농구코치 아르바이트를 한다. 차가 없어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했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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