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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1-25 21:57
가정폭력과 여성 인권(1)
 글쓴이 : 신숙희
조회 : 3,264   추천 : 0  

내가 시드니에 도착해 얼마 되지 않은 1994년, 남호주 지방 신문에 난 사건을 기억한다. 테일러(Taylor)라는 55세 된 여인이  3년간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남편을 총으로 죽였으나 고의살인(manslaughter)이 아닌 것으로 고등법원에서 판결이 나 보석으로 풀려났다. 사건의 발단은 실직 후 사사건건 트집만 잡던 남편이 평소 잘 먹던 딸기잼 대신에 자두잼을 들고 가자 목을 조르고 오븐에 머리를 쥐어박고 발로 찼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한다. 

그 사건이 일어난 2년 뒤 시드니에서도 50대 여인이 남편의 강간과 폭력에 견디다 못해 남편을 죽인 사건이 있었다. 그 남편은 다리미를 부인의 얼굴에 던져 코를 부러뜨리고 발로 차고 군화로 얼굴을 짓이겨 12개의 치아가 부러지게 할 만큼 폭력을 가했다고 한다. 담당 의사의 보고에서는 그 피해자가 전형적인 매 맞는 아내 증후군 (battered wife syndrome)으로 고통을 받았다고 했는데 물리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수치와 창피, 고독, 열등감 등의 정신적인 고통이 그런 경우 더욱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아내가 남편의 폭력에 견디다 못해 죽이는 이런 종류의 사건은 종종 일어난다.


작년에 시드니 한국여성회가 주관한 '재호가정폭력의 실태와 방지'라는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발표자는 한국 이민자들의 가정폭력(domestic violence) 상담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2004년에 조사한 실태를 보도했는데 내 기억으로 34건의 가정폭력 중 9건이 남자가 여자에게 구타를 당한 경우였고 나머지는 모두 남자가 여자에게 폭력을 일으킨 경우였다. 9건 중 7건은 여자가 남자의 폭력에 견디다 못해 맞서 싸우다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즉 여성 파트너가 가정폭력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경우는 남성으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해온 피해자라고 했다. 결국 가정폭력의 주범은 아직도 남자라는 통계이다.


이러한 가정폭력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계속되고 더 악화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2014년 신문에서도 피살 여성의 4분의 3이 바로 가족 손에서 죽었으며,  NSW 주 가정폭력 신고 건수만 하루에 37건, 일주일에 1명씩 현재 또는 이전의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다고 보도했다. 불과 몇 주 전 시드니의 아파트에서 태국 남성이 전 동거녀에게 불을 질러 중화상을 입혀 중태 상태에 있다. 


얼마 전 호주 여자 친구가 우리 집에 들러 같이 얘기를 나누던 중 호주 사회 내에서도 가정폭력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아주 널리 퍼져 있으며, 자신만 해도 매 맞는 아내를 많이 알고 있다고 했다. 오프라 쇼에서도 미국 여성의 70%가 남편에게 맞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호주에서는 심지어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 1년간 별거했다는 증명만 있으면 이혼의 사유가 될 정도로 아내의 직위가 높으며, 만약 남편이 아내를 구타했을 경우 경찰에 신고하면 그 남편에게 가정 폭력범 명령서(domestic violence order or restraining order)를 발부한다. 그러면 남자는 여자 집을 방문하지 못하게 되며 부부의 경우 법원에 고소할 수 있게 된다. 가정 내 폭력이 계속될 경우 피신처(refugee house) 같은 곳에 아이를 데리고 피신할 수 있다. 내가 살던 울릉공에도 피난처가 두 군데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 곳은 우리 집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아주 깨끗하게 단장해 놓았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한 달에 한 번 식품이나 헌 옷을 모아서 갖다 주려고 내부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그곳은 단 한 명의 남자도 발붙이지 못하게 되어 있는 현대판 성소이다. 이런 호주에서도 여자 3명 중 1명이 가정폭력을 경험한다는 통계가 있다. 


호주 신문에 발표된 부부간의 폭력에 관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민자들이 호주 태생의 사람보다 자신의 파트너를 죽이는 비율이 3배나 훨씬 높았다. 이민자 가운데 남자가 더욱 많이 가정폭력을 일으키는 이유를 그 연구자는 그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 자꾸 쌓인 폭력이 결국 집안 내 살인(homicide)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불경기가 계속되고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경제적 스트레스가 가정폭력으로 점차 이어지는 가능성이 높고, 여자가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경우가 많아 소위 하우스 허즈번드(house husband)라고 해서 남자들이 집에서 가사를 돌보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갈등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빈도도 높다고 했다. 이민자의 경우 그 스트레스가 더욱 심할 것이고 호주의 문화를 잘 모르는데다가 영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알고 있는 시설조차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민자센터 또는 여성센터(women centre), 국제호주(International Australia) 등에서 상담을 받아 준다. 그래서 이민자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자국 언어를 통한 무료 상담소 설립이 절실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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