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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4-16 22:00
고마운 남편들
 글쓴이 : 신숙희
조회 : 3,088   추천 : 0  

 남편이 호주에서 직장 생활 10년째 그만둔다고 했을 때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집을 금방 사서 은행 빚도 많았다. 남편이 40세에 호주에 와서 박사학위를 시작해 45세에 마친 뒤 우리의 재산은 겨우 몇천만 원이 고작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소위 한국에서 SK 출신으로 공부로 투자한 시간이 너무 많아 재정적 독립을 이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로 프로그램 개발한 것을 테스트하는 직업이었다. 한 서너 군데 직장을 바꿨지만 그런대로 견디며 우리 가족의 가장으로 최선을 다해 왔다, 한국에서 최고 인기 있는 연구소에서 20년 간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최고의 연봉을 받은 것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는 월급이지만 달러를 버는 것에 대해 나는 늘 자랑스러웠다. 그런 남편이 직장 생활을 결국 그만두게 된 것도 기술적 문제라기보다는 대인관계에서 힘든 점 때문이었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둔 시점이 얼추 내가 박사학위를 마치고 풀타임으로 일을 시작할 때였다. 남편은 남 밑에서 일하기 싫다며 자신의 사업을 구상한다는 핑계로 더 이상 직장을 구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이가 55. 꼭 직장을 잡으려면 잡을 수 있지만 젊은 매니저들에게 이래저래 야단을 들어가며 일하기 싫다고 했다. 어느 날 보니 컴퓨터 책을 모조리 없애버렸다. 하다못해 파트타임으로 대학에서 시간강사라도 구해서 할 것이라는 나의 기대를 완전히 부수었다. 더 이상 머리를 써서 생각하기 싫다고 했다. 그 뒤 한 5년간 인터넷으로 사업을 한다고 종일 컴퓨터에 앉아 로봇을 수백 개 이상 만들다가 결국 많은 돈만 잃게 되었다. 마음이 어느 정도는 넓어서인지 돈을 잃은 것에 대해서는 별로 화가 나지 않았으나 컴퓨터에 중독돼 건강을 잃을 것이 염려됐다. 컴퓨터 앞에 종일 앉아있는 뒷모습조차 보기 싫었다.

내가 8년쯤 직장 생활을 하고 나서야 남편의 일하기 싫은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일 자체가 싫다기보다 윗사람들과 정치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일들에 너무 진절머리가 났다. 나이가 들어 직장을 옮기기에도 어중간하고, 하는 일에도 그전만큼 정열이 넘치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다 호주는 매년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뉴 테크놀러지가 교육계에도 바람이 불어 젊은 사람들이 돈을 적게 받고도 훨씬 상냥하게 웃으면서 일을 효과적으로 해냈다. 다른 방향, 즉 영어학원 개설로 직장을 바꾸어야 할지, 내가 하고 싶은 상담 쪽으로 다시 배워 그쪽으로 나갈 것인지 아니면 은퇴를 해 편안하게 살아야 할지 여러 가지 마음이 일어났다. 호주의 직장은 올라갈수록 지도자로 기대만 높고 특히 영어가 제2외국어인 상황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 보니 더욱 그런 도전이 크게 다가왔다. 이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다시 도약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 즉 세계를 돌아다니며 영어 교사들을 훈련하는 꿈을 펼쳐야 할 것인지 등 소위 직업의 사춘기를 겪게 됐다

본인은 대인관계를 원만히 하는 편인데도 까다로운 상사와 맞추기가 너무 힘들었다. 학생들과 교수 사이에 아무런 잡음 없이 지나온 정도의 대인능력이 있어도 나 자신의 세계 속에 산다고 학장이 불만을 털어놓았다. 남편은 정말 혼자 사색하기를 좋아하며 대인관계를 가장 못 하는 축에 들어가니 그 고통이 얼마만큼 컸을지 상상이 됐다. 가족을 위해 몇십 년을 봉사해온 남편들, 그러나 은퇴 후엔 가족으로부터 소외되고 부인으로부터 구박을 받기 일쑤이다

오복녀 중의 조건이 '남편이 없는 여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남편은 불필요한 존재가 되기 쉽다. 나도 30년을 같이 살아오면서 남편이 하는 행동 말투 하나하나가 그슬려 그 현상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남편들에게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민을 와서 어떤 직종으로든지 달러 돈을 버는 남편들에게 조금 서운한 마음이 있더라도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면 남편들의 처진 어깨가 더욱 올라갈 것이다. 

어느 한국 강사가 남자들이 술집에 가는 이유가 여자들이 감탄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오늘 1시간 강의료의 삼 분의 일도 안되는 돈을 청소해서 벌어 들어올 남편에게 감사, 감탄, 감복을 연발하며 맞이하려고 한다. 오랜만에 맛있는 요리를 한 상 차려 놓고. 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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